시즈오카의 이즈로 흘러 들어온 요리토모는 거병 후 다이라 가문과의 전투에 반전 승리를 거두며 가마쿠라 쇼군(The First Shogun)이 되었다.
요리토모가 이즈에서 힘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물 소개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는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부터 가마쿠라(1185-1333) 시대 초기의 쇼군(막부의 최고 권력자)으로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이었던 인물입니다. 아버지 요시토모(義朝)가 다이라 기요모리(平清盛)와 전투를 치룬 헤이지의 난에서 패한 후 기구한 운명 아래 처형을 면하게 되면서, 아직 14살이었던 어린 요리토모는 이즈의 히루가코섬(蛭ヶ小島)로 유배되어 이후 거병하게 되는 해까지 20년의 기간을 이 지역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1193년,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이 된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아름답고 웅장한 후지산 기슭에서 사냥을 겸한 대규모 군사 연습인 몰이 사냥을 실시했습니다. 사냥은 당시 무사에게 수렵이라는 의미 외에도 산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신성한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후지의 몰이 사냥은 산신에게서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에 대해 특별한 축복을 받는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요리토모는 특별한 무대에서 최고 권력자로서 강력한 힘을 과시했습니다.
유배자(죄인)에서 무가 정권의 수장으로 군림한 요리토모. 그 영광의 이면에는 이즈에서 보냈던 나날들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지역을 방문하는 어드벤처, 체험형 액티비티
이즈에서 보낸 나날들
요리토모가 유배된 히루가코섬은 현재 이즈노쿠니시(伊豆の国市)에 있습니다.
유배자(죄인)로서 이 지역을 찾아온 요리토모였지만, 바깥 세상과 단절 없이 유모와 이들 친족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라면 빼놓을 수 없는 승마와 수렵 등 매일 훈련에 열중하는 생활을 보냈습니다.
이즈는 스루가만(駿河湾)과 이즈의 여러 산들로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며 연중 내내 온난한 기후를 자랑합니다. 과거 요리토모가 말에 올라타 이즈의 대자연을 뛰어다닌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즈반도 각지를 돌아보는 사이클링이 인기입니다.
부인 호조 마사코와의 만남
요리토모는 이 땅에서 부인 호조 마사코(北条政子)와 만나게 됩니다. 마사코의 아버지인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는 결혼을 맹렬히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결혼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도키마사는 훗날 요리토모의 후원자로서 다이라 가문을 토벌할 때 요리토모와 함께 싸웠으며, 마사코는 요리토모 사후에 가마쿠라 막부를 주도하는 등 요리토모의 거병과 가마쿠라 막부 성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요리토모와 마사코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유명해진 장소가 ‘이즈산 신사(伊豆山神社)’입니다. 이 신사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 이후, 수많은 무장들이 무인으로서 오랜 명운과 천하 제패를 기원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같은 영험한 기운을 얻고자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즈산 신사의 신관은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당시 세력으로 따지자면 미나모토 가문을 웃돌던 다이라 가문에 의해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였습니다. 요리토모는 신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마사코와 만나 힘을 키워 거병했습니다.”
요리토모의 거병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에서 승리한 다이라 가문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차츰 다이라 가문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고, 다이라 가문에 반대하는 세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모치히토왕(以仁王)은 다이라 가문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패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요리토모 자신에게 생명의 위험이 닥쳐오는 와중에 거병을 결단합니다.
유배자로서 이즈에 온 지 20년, 미나모토 가문의 재흥을 기원한 미시마타이샤 신사(三島大社) 제례일을 ‘미나모토 가문의 재흥 거행일’로 정하고 1180년 8월 17일, 이즈 니라야마에서 다이라 가문 타도를 위해 거병했습니다.
요리토모가 거행에 앞서 백일 기도를 올린 미시마타이샤 신사에는 계절마다 꽃들이 아름답게 수놓으며 사계절 다채로운 모습으로 참배객을 맞이합니다.
미시마는 후지산의 복류수가 곳곳에 샘솟아 온 마을에 흐르며 ‘물의 도시 100선’에도 선정된 물의 도시이자, 이곳의 상징인 겐베강(源兵衛川)을 따라 산책하면 아름다운 일본의 풍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지산의 복류수와 양질의 토양으로 키워낸 야채와 과일 등의 특산물이 많아 먹거리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특히 장어의 경우, 지하에서 끌어올린 복류수에 풀어놓아 한층 맛을 더하는데, 일본 전국에서 마니아들이 방문할 만큼 유명한 가게가 많습니다.
이즈노쿠니시에도 ‘혼진(本陣)’이라는 요리토모와 인연이 깊은 장소도 있습니다. 1187년경에는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이 지역에 체류하며 드나들었다는 온천이 있으며,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앉아 쉬었다는 바위가 있는 노천탕 등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나 온천(古奈温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에도성(江戸城) 축성에 사용된 돌을 헌납했다고 알려진 관내 채석장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을 연출합니다. 시설에서 머무실 때 견학도 가능합니다.
이즈 지역에서 이루어진 요리모토의 거병은 무사들의 시대인 가마쿠라 시대(1185-1333)로 이행하는 발단이 되었습니다.
정리
아름다운 이즈의 자연과 신사는 부모형제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진 요리토모의 마음을 치유하고 다이라 가문 타도를 위한 각오를 다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인 마사코와 친정인 호쿠조 가문의 도움과 함께 유례없는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하며 미나모토 가문은 물론, 당시 쇼군과 주종 관계에 있었던 무사들과 하나 되어 다이라 가문을 멸망시킨 후, 에도 시대(1603-1868)까지 이어지는 무가 정권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지 않는 기량과 정치가로서의 수완은 이즈에서 보냈던 20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의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는 이즈는 일본의 역사가 응축된 매우 독특한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